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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의 성장사

창업기 (1946년 ~ 1965년)
창업주인 박용학 전 대농그룹 명예회장께서는 1946년 자본금 10만원의 대한계기제작소를 설립 하였고, 착실히 사업 기반을 다져 1949년 다시 오양실업을 설립하여 숙원사업이던 무역업에 진출하였습니다. 6.25 중 1953년 부산에서 대한비료를 설립하여 비료사업(수입)에 진출하였으며, 서울수복 후 대농의 모체가 되는 대한농산을 1955년 창립하였습니다. 이후 1962년에 삼양제분을 설립하여 제분업에 진출하고 창고업 등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사업 기반을 이룩 하였습니다.
도약기 (1966년 ~ 1973년)
1967년 고려수산과 대한선박을 설립, 수산업과 해운업에 진출하고 1968년에는 한일제분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분업에 진출하였고, 1968년 금성방직, 태평방직을, 1969년에는 합동방직을 인수하면서 대농의 주업종인 면방업에 진출하게 되고 1969년에 미도파 백화점을 인수하면서 대농그룹의 근간을 이룩하였습니다. 1972년에 관악 골프장을 인수하고 1973년에는 대농유화를 설립하여 도약에 이은 다각화 기반을 다졌습니다. 1973년 대한농산, 한일제분, 방직 회사들을 통합하여 (주)대농으로 개칭하여 도약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조정기 (1974년 ~ 1984년)
1973년의 1차 석유 파동과 고가의 원면 구매로 인한 대농의 채산성 악화로 그룹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전략산업(중화학 공업) 진출의 기회를 놓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도 1978년 대성건설을 인수, 건설업에 진출하면서 해외건설 경험을 축적하고, 국내에서는 환경분야에 특화하여 위치를 확고히 하였습니다. 백화점은 1975년 업계 최초의 기업공개를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이루고 1978년 청량리 가고파 백화점을 인수, 청량리점으로 개점하고, 수퍼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등 건실한 성장세를 지속 하였습니다. 모기업 대농은 안양공장, 대구공장 등 자산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10여년에 걸쳐 기업 체질을 강화 하였습니다.
재도약기 (1985년 ~ 1995년)
1985년 이후 대농은 그 동안의 부진을 털고 사업다각화에 나서 멜란꼴, 텐셀 등 특화상품과 염색 및 의류 등 다운스트림 분야에 진출하는 등 사업의 고부가가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해외 생산 기지를 구축하여 중국 청도에 면사, 면직 및 봉제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우즈베키스탄의 공장에도 지분에 참여 하는 등 세계 여러 지역에 진출 하였습니다. 유통분야에서 상계점의 개점으로 본격적인 백화점의 다점포화를 이룩한 미도파 백화점은 1996년 9월 춘천점을 개점하고, 또한 스파메트로를 설립하여 편의점업에 진출하였고, 미도파 푸드시스템을 설립, 외식사업에 진출하는 등 유망한 분야와 신규사업에의 진출도 활발하게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방송, 언론분야에의 진출도 활발하여 1989년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하고 내외경제 신문을 복간하였으며, 1994년에는 노원 CATV를 설립하여 유선방송업에 참여하였고, 또한 1992년에는 메트로콤을 설립하여 광고대행업에도 진출하였습니다. 1987년에는 한국창투 설립에 참여하고, 1991년에는 대농창투를 설립하는 등 금융업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며, 1994년에는 특장차 생산업체인 대농중공업(KJ산업)을 인수하여 중공업 분야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였고, 자동차 부품 업체인 카틱을 인수하여 자동차 부품도 생산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미국 VWDG사에서 자본을 출자하고 S/W개발 업체인 한메소프트를 인수하여 향후 유망 사업으로 예상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과 가상현실 게임 사업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시련기 (1996년 ~ 1997년)
그러나 대농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신규 사업 부문으로의 사업 다각화로 별다른 실적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주력 사업인 면방직 사업의 구조 조정이 지연되면서 외형유지를 위해 물량 위주의 생산 및 영업방식을 유지한 결과, 재고자산의 누적에 따른 운전자 부담의 확대로 만성적인 자금부족을 겪으면서 외부 차입금이 확대됨에 따라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 부담율 이 매년15%를 상회함으로써 기업의 재무적인 안정성이 저하되었습니다. 또한 1997년에 들어서면서 대농그룹의 지배회사가 된 (주)미도파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면서 그룹 차원에서 자금 유출이 발생하였으며, 한보, 삼미, 진로 등 재벌그룹의 잇따른 부도사태로 국내 자금 시장이 급속히 경색됨에 따라 자금 운용상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면서 회사는 1997년 5월 19일자로 (주)미도파, (주)대농중공업, (주)메트로프로덕트 등 계열회사와 함께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농은 경영정상화에 진력하였지만 1997년 8월 25일 채권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회의에서 현재의 상태로는 회사의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1997년 9월11일에 회사 정리 절차 개시 신청을 하였습니다.
제2의 창업기 (1998년 ~ 2004년)
혹독한 시련을 겪은 대농으로서는 전면적인 경영 합리화를 추진하여 인력의 정예화, 인건비 및 운영경비 절감, 생산 관리의 효율화, 영업 경쟁력 향상 등 효율적인 경영을 추진하고 자구 계획에 의한 부동산의 처분 등으로 이자 부담이 높은 채무를 조기 상환하여 영업외 비용을 경감하였으며, 1998년 들어 달러화 강세로 인한 수출 경쟁력 향상 및 당사 주력 상품인 Melange사 판매 호조로 채산성이 현저히 개선되어 흑자 경영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당사는 총매출액 대비 달러의 결재가 이루어지는 수출 비중이 높아(80% 수준) 달러화 강세 지속이 손익 호전에 기여하고, 원면, Polyester 가격안정 및 Polyester의 원화구매로 P/C사 경쟁력이 향상되고, 법정관리 실시로 이자 부담이 경감되어 손익의 호전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약 (2005년 ~ 현재)
2005년 국내 최대의 디벨로퍼 그룹인 (주)신영을 대주주로 맞이하여 충북 청원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고 제2의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5S의 실천을 통한 쾌적하고 청정한 신공장으로의 이전, 최신 설비 신기계의 도입, 이를 바탕으로 한 자동화된 생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가격과 품질경쟁력 향상, 친환경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09년 원단회사 (현, 대농텍스타일) 인수 및 염편직 설비를 갖춘 공장 (현, PDI)에 대한 합작투자를 진행하였고, 이듬해 인도네시아에 봉제공장 (DAENONG GLOBAL)을 설립하면서 명실공히 버티컬 체제를 갖춘 종합섬유기업으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또한, 2014년에 들어서서는 사업다각화 및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부동산 개발부문을 신설하고 첫 사업으로 2015년 3월 용인(기흥 역세권)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혼합된 주택단지의 분양을 성공리에 진행 하였습니다.
대농은 시장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시대적 조류와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다시한 번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을 약속드리며, 인간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종합 섬유 기업, 신뢰와 만족이 느껴지는 고객 제일 기업, 보람과 희망을 키우는 인간 존중 기업을 지향하여 21세기 생활문화를 선도하고, 미래를 경영하는 기업이 될 것 입니다.